지난 12일, 프레스데이를 시작으로 ‘2017 프랑크푸르트 모터쇼’가 막을 올렸다. 자동차 회사들은 앞다퉈 전기차 전략을 선보이며 친환경차의 미래를 제시했다. 당장이라도 전기차가 도로를 압도할 둣한 분위기다. 하지만 대부분 ‘출시 예정’의 미래형 콘셉트다. 게다가 장밋빛 청사진을 현실화하기까지 수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다.

내연기관 시대의 종말을 말하기엔 아직 이르다. 실제로 소비자 대다수는 여전히 내연기관 얹은 차를 산다. 실제로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의 비중은 1%에 못 미쳤다. 따라서 효율이 높은 최신 디젤 엔진은 전동화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히 해낼 전망이다. 

배기가스 시험 조작으로 시작된 불신은 디젤 엔진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 프랑스와 영국이 2040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할 계획이라는 점도 힘을 보탰다. 그래서 국내에서도 한동안 디젤 엔진 규제의 찬반을 놓고 팽팽한 의견이 오갔다. 그런데, 정작 유럽에서는 디젤차가 계속 잘 팔린다.  

‘유럽자동차제조사연합(ACEA)’의 자료에 따르면, 1996년 유럽연합 15개국에서 전체 승용차 중 디젤의 비율은 22.9%였다. 2010년엔 52%로 절반을 처음 넘었다. 2015년 디젤 게이트가 불거졌을 때 비중은 52.1%. 2016년에는 49.9%를 기록했다. 디젤 게이트는 유럽 내 디젤 판매량에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유럽 소비자가 디젤차를 사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높은 연비와 효율이다. 디젤 엔진은 열효율이 높다. 그만큼 이상적인 연비를 얻어내기 쉽다. 대신 디젤 엔진의 제조비용은 가솔린에 비해 높다. 배기가스 후처리를 위해 SCR(선택적 환원 촉매), DPF(디젤 미립자 필터), 요소수 등 각종 장비를 달아야 해서다.  

제조원가가 비싼데다 요즘 세간의 시선마저 곱지 않은 디젤 엔진. 하지만 오랫동안 디젤차를 만들어온 자동차 제조사들은 기술로 이를 뛰어넘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조작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무조건 디젤을 부정해선 곤란하다. 연료로서 디젤의 가치는 높기 때문이다. 따라서 보다 친환경적인 디젤 엔진을 개발해 얹는 방법이 가장 이상적이다.  

디젤은 연료 자체의 ‘에너지 밀도’가 높다. 미국 에너지 정보국(US 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이 2013년 발표한 ‘운송 연료 효율성’ 관련 조사에 따르면 디젤의 에너지 밀도를 능가하는 운송용 연료는 찾아보기 어렵다. 디젤을 100으로 잡았을 때, 가솔린은 87, LPG(액화석유가스)는 64, LNG(액화천연가스)는 60이다.  

디젤에 대한 요즘의 인식과는 달리 오히려 환경 규제 때문에 디젤 엔진이 필요하다는 분석도 있다. 프로스트 앤 설리번(Frost & Sullivan)은 “2020년부터 적용할 유로 7 규제가 디젤차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디젤차의 판매가 줄어든다 해도, 2020년에 유럽 시장에서 50%의 점유율을 예상한다”고 밝혔다.  

유로 7을 적용하면 제조사는 신차의 평균 CO₂ 배출량을 95g/㎞ 이하로 낮춰야 한다. 2021년부터 1g/㎞ 초과 시 한 대 당 95유로(약 12만 원)의 벌금을 매길 예정이다. 따라서 CO₂ 배출량이 가솔린보다 낮은 디젤차로 대응할 가능성이 높다. 현행 모델을 예로 들면,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E220d는 124g/㎞, E200은 156g/㎞, BMW 5시리즈 520d는 135g/㎞, 530i는 153g/㎞다. 

<오토모티브 월드> 또한 “디젤차의 질소 산화물(NOx) 감소에 드는 비용은 비선형적으로 증가한다. 일례로 유로 6의 통과를 위해서는 유로 3 대비 3배의 투자비용이 든다. 생산 비용 증가로 인해 저가 시장에서는 디젤차의 점유율이 줄어들 수 있다. 하지만 중형급 이상 시장에서는 여전히 50% 이상을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한편, 일부 자동차 제조사는 “신규 디젤 엔진을 개발할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디젤 엔진을 오래도록 만든 브랜드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활용해 깨끗한 디젤 엔진 만들면, 나날이 엄격해지는 환경 규제에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이다.  

혼다는 2018년 3월 시빅에 직렬 4기통 1.6L 신형 디젤 엔진을 자동 9단 변속기를 얹어 선보일 예정이다. 혼다에 따르면 ‘국제 표준 소형차 배출가스 측정법’에 맞춰 개발했으며, 실제 주행 시험(RDE, Real Driving Emission)을 통해 공식 테스트를 마쳤다. 이 디젤 시빅은 99g/㎞의 CO₂ 배출량, 27㎞/L의 연비를 기록했다. 

BMW는 보도 자료를 통해 “효율적인 디젤 엔진은 환경 보호에 기여한다. 배출물은 가솔린 엔진보다 깨끗하다. 사실과 과학적 증거를 토대로 객관적 토론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하랄드 크루거(Harald Kruger) CEO는 “미래의 이동성은 최첨단 디젤에도 분명 의존할 전망”이라고 밝혔다. BMW는 이미 유로7을 만족시키는 엔진을 개발한 상태로 알려졌다.  

다임러 그룹의 디터 제체(Dieter Zetsche) 회장은 “우리는 디젤 엔진이 구동계에 계속 사용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다임러 그룹은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에 얹을 신형 디젤 엔진을 위해 30억 유로(약 4조65억 원)에 이르는 대형 투자를 단행했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앞으로 이 엔진을 승용차 및 밴 등 전체 라인업에 걸쳐 얹을 계획이다.  

그렇다면 디젤차를 과연 지금 사도 될까? 물론이다. 내연기관차가 사라지기까진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 있다. 2015년 기준, 전 세계에는 12억8,227만 대의 자동차가 달리고 있다. 이들을 전기차로 대체하려면 철저한 전력 수급 계획이 필요하다. 내셔널 그리드(National Grid)의 ‘미래 에너지 시나리오’ 보고서는 “전기차의 수요 관리에 실패할 경우 에너지 시스템의 문제 발생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가솔린, 디젤 등 내연기관차는 당분간 전기차와 짝을 이룬다. 특히 장거리 주행 땐 아직까지 디젤 엔진의 장점이 뾰족이 두드러진다. 따라서 전기차 충전 인프라가 완성되고, 충전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할 때까진 디젤 엔진이 친환경 내연기관의 트렌드를 이끌 가능성이 높다. 또한, 전기차를 사더라도 지구 대기환경에 미치는 영향에서 자유롭진 않다.  

전기 에너지 대부분을 화석연료 또는 원자력으로 생산하는 까닭이다. 가령 중국의 에너지 수급 비율에서 석탄과 석유가 차지하는 비중은 80%에 달한다. 한국은 2015년 기준 67.8%이다(2016 에너지통계연보 기준). 설령 2040년 내연기관 신차가 퇴출된들 차령 기준으로 최소 2~3세대 뒤의 일이다. 그리고 기술발전을 통해 문제 해결을 기대할 수도 있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자동차 제조사가 디젤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